시대가 변하면 꽃미남상도 변하게 마련이죠. 1970년대 꽃미남(당시에는 꽃미남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아 꽃미남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었습니다)으로 꼽힌 배우는 KBS의 경우에는 백윤식 민욱 이영하 홍요섭이 있었고 TBC에는 한진희 노주현이 있었습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MBC는 주연급 배우 중 특별히 ‘꽃미남’이라고 불릴 만한 배우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1970년대 ‘전속 탤런트 제도’에서 민욱은 중후하면서도 반짝이는 외모가 반짝이는 꽃미남 주연 배우였습니다. TBC 간판인 노주현과 한진희가 멜로드라마에서 맹활약한 반면 민욱은 대하드라마, 사물 등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였습니다. KBS가 공영방송이라 상대적으로 멜로 비중이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민욱의 중후한 외모는 아무래도 멜로에는 이영하와 홍요섭이 더 어울렸습니다.
부르주아틱한 민욱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플로레타리아공화국(!)의 북한인으로 역을 많이 맡았어요. 남로당 간부부터 인민군 장교까지 다 합쳤어요. 물론 ‘붉은 왕조’라는 단편 드라마에서는 무려 최고의 톱인 김정일 배역까지 했지만 당시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뻔뻔스럽고 못생긴 김정일 역으로 꽃미남 배우 민욱이 당당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두 사람을 비교해도 민욱과 김정일은 비교가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민욱은 중후하면서도 안정적인 이미지, 그리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까지 더해져 누구나 인정하는 KBS 간판 배우가 되었습니다. 물론 전속 탤런트 제도가 없어지면서도 각 방송국에서 중용하는 배우였습니다. 민욱이는 연기도 훌륭했는데 특히 발성이 좋았어요. 그쪽 업계 사람들은 극중 대사를 하는 경우를 ‘대사를 친다’고 하는데 목소리도 훌륭하고 발성도 좋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배우들이 현재 배우보다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는 아무래도 조심스럽습니다. 연기력 평가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 전속 탤런트 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연기의 기본 중 기본인 대사 때리기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옛날 배우들 중에는 연극배우나 성우 출신 배우들이 특히 많았기 때문에 적어도 ‘대사를 치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현재 배우들보다 낫다는 게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훈남 포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민욱은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도 최고 수준의 훌륭한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하게도 민욱을 늙게 했고, 그는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