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본다.

지난달 미국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 박사의 나는 왜 명왕성을 죽였나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천문학에 관심이 생겼다.그러나 기초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어려운 책을 고르면 분명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내팽개칠 것이기 때문에 천문학을 다루는 쉬운 책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다가 제목에 빠져 처음 고르게 된 책이었다. 나는 왜 명왕성을 죽였는가를 통해 실제 천문학 내 관측, 이론, 공학, 분석, 계산 등 다양한 분과가 있으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관측을 하는 천문학자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았기에 독자들이 의문을 갖는 이 참신한 제목을 보고 사실 크게 놀라지 않았다. 마이크 교수님 덕분에 아는 척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제목에 빠져 바로 고르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천문학자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할까.

솔직히 말해 내게 한국의 천문학자는 낯선 언어의 조합이다. 국가에서 우주연구사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할 것 같지도 않고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애당초 미흡한 데다 학과 통폐합도 서슴지 않고 이뤄지는 한국에서 천문학자라니. 일단 그 수가 과연 몇 개나 될지 궁금했다. 아니 그 전에 전국에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전국에 불과 7곳뿐이었다. 이 정도면 엄청 좁은 길인데◆한국의 천문학자들은 서로 하나의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천문학자라는 것도 신기한데 저자 심채경 박사가 국내파 천문학자라는 점은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천문학자라면 당연히 미국 러시아에서 학위를 받아야 할 텐데 국내에서만 공부한 분이라니.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온 빛과 소금처럼 보였다. 그래서 책 표지 날개에 적힌 심채경 박사의 소개 일행이 내게는 아주 멋지고 닮고 싶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은 꼭 곳 곳에 과학 용어가 뿌려지고 있을 테니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검색해서 읽으려고 생각했다. 아무리 표지가 예쁘고 두텁지 못한 책이나, 어쨌든 천문학 관련 책이라 그러자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있다고 본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필요가 없다. 점점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반쯤 누워서 읽었다.

읽어 보면 이 책은 제목으로 우주, 행성, 별이 아닌 천문학자를 나타낸 것처럼 천문학자로 살아가는 심·치에교은 박사의 일상의 생각과 이야기가 중심의 에세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천문학자의 생활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상상 속의 과학자와는 전혀 다르다. 언제나 연구실에서 자기 연구에만 몰두할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 연구자/교수로서 생계 때문에 항상 다음의 연구 과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연구 계획서의 작성에 여념이 없고, 가르치는 교양 과목 수업을 준비하고 그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문의 메일에 성실히 대답을 하고 후배의 진로 고민 상담에 시간을 내어 조언을 하고 경비 처리 때문에 영수증을 모아 기타 각종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오전 오후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모두가 퇴근한 조용한 밤이 돼야 본인의 연구와 공부에 집중하다.

그러나 이렇게 어수선한 일상을 주는 와중에서도 저자는 끊임없이 우주에 대해서 생각하고 우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연구하고 온 분야에서 벗어나고 새로 달을 연구하게 될 제목에 달이 든 영화를 꼼꼼히 관찰하고 상=테그쥬페리의 ” 어린 왕자”속의 작은 왕자가 소행성에서 일몰을 계속 보려면 어떻게 의자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지도 계산한다. 일본의 소설가 카쿠타 미츠요의 『 종이 달 』에 나온 새벽 하늘의 초승달을 보고 그럴 리는 없다며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고 초승달이 아니라 초승달이 되어야 한다고 정정한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의 표지에는 음력 달의 모양이 그려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고 이것이 저 녀석도 모르게 튀어나오다 직업병인가 싶어 재미 있었다. 또한 저자는 여성 우주 비행사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지적한다. 한국 첫 우주 비행사인 이·소연 박사가 “여성”였기 때문에 받은 부당한 비난을 얘기하고 저자 또한”여성”천문학자이기 때문에 정규직의 면접과 대학원에서 직접 겪었던 차별을 풀다. 이 책에서도 유서 깊은 사회의 여성 차별로 대면하면서(성 유전자 XX로 태어나면 누구도 빠짐없이 경험하는 문제이므로, 슬프지도 않다. 그냥 여기서 또? 하는 생각에 화가 날 뿐) 이 지긋지긋한 차별 문제가 도대체 언제쯤 사라질까 싶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요지부동인 것처럼 보이는 우주조차 실제로 지구에서 보면 1시간에 15도씩 움직인다고 한다.이는 우리가 조용히 머무는 동안 지구가 자전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이곳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느꼈다. 내가 느끼지 않아도 세상은 조금씩 돌아가고 있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문제도 나중에 보면 별것도 아닌 작은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그러니까 지금 그 문제에 눌려 납작해진 것처럼 느껴도 언젠가 달라질 거라고 믿고 내 속도와 궤도에 맞춰 잘하면 된다.

천문학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을 통해 천문학자들의 일상과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천문학자 중에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이런 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천문학자들의 일상과 생각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재미있고 뜻깊었다. 마이크 브라운 박사도 그렇고 심채경 박사도 그렇고, 실로 천문학자들이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 같다. 김상욱 교수가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천문학도 문학이기 때문일까. 심채경 박사가 다음에도 또 책을 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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