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다/고르다 빙의문/손석구 고르기/배우 빙의문/손석구 빙의문/손석구 빙의문/손석구단편 202022. 어미 고양이 All Rights Reserved ※ 본 작품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Ⅰ
소주를 망설임 없이 목에 건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별을 고했다. 나는 또 꼬깃꼬깃 그의 손을 잡고 매달렸고 결국 보기 싫다는 눈물을 흘리며 횡설수설 변명 아닌 변명을 쏟아내야 했다. 매번 같은 패턴이었지만 나에게 그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질렸니? 아니면 그 남자 때문에 질렸니?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방해꾼, 이름을 차마 뱉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어. 너에게 사랑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루에도 수백수천번은 생각했다.
속삭이며 욕을 하자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이 나에게 닿았다. 여러분 오늘 하루만 참으세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도망쳐온 그 시간을 원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소주잔은 어느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캔 소주를 마신다고 주량이 약한 것도 아닌 여주는 금방이라도 취할 것 같았다. 옷소매로 계속 눈물을 닦아서인지 눈가 언저리가 따끔따끔했다. 다행인 것은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것뿐. 주문한 손잡이 표면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소주를 마시기 위해 예의상 주문한 음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바로 그 생각은 그만두었다.
정말 제가. “
말끝이 흐리다. 그때 도망친 죄를 지금 받을 일인 줄 알고 살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 내가 이런 거 받아도 되나? 생각할수록. 세상이 둘로 갈라져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부끄러운 댓글도 괜히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것들이 너무 과분하고 무서워서 먼저 손을 뗐다. 나는..나는 너가 원하는 그런것 절대 너에게 줄 수 없어.. 그게 내가 그에게 도망가듯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어. 내 사랑은 늘 얕고 투명했고, 그의 사랑은 늘 깊고 잔잔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같지도 않은 변명이 복잡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아줌마 – 소주 한 병 더…’
소주를 주문하자 갓 맡은 플라스틱 의자가 당겨졌고 누군가 앉았다. 자연스럽게 소주잔이 가득 찼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저예요, 저 손석구”
그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토기가 올라왔다. 너무한 것 아니냐며 내 등을 때리러 걸어오는 남자에게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오… 오지 마…” “왜 그래요, 친절하게 등을 두드리려고 왔는데” “이번에도 네가 그랬구나…?” “네? 뭐가…” “네가 이번에도 그 남자에게…” “아… 저 쓰레기”
소주만 부은 탓인지 물 같은 것만 뱉어내 더욱 괴로웠다. 기침 때문에 이미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지금 나타나서… 지금까지 여주는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앞에 나타날 줄 알았다면 다른 생각을 했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석구는 여주의 목소리가 뭔가 싶었지만 이내 웃으며 두 손을 들어 결백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근데 이번에는 정말 내가 아닌데’
그런 석구를 눈물 어린 눈물 사이로 올려다보았다.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침착한 석구의 행동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번에는 아니라고 치자. 여주는 다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일을 마친 지 얼마 안 됐는지 정장 차림의 석구는 여주를 따라 여주의 임무를 맡았다. 꼭 술을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 다시 내 배를 긁으러 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여주는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입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아니라…”
석구는 괜히 소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주가 다른 남자를 만날 때마다 방해를 한 게 모두 자신이 벌인 일이었다. 여주는 그만두라고 고집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남자의 얼굴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 언저리가 아릿한 느낌이 들어 좋아, 마음대로 해라고 잠자코 내버려 두었더니 여기까지 왔다. 내가 그때 그 깊고 더 온화한 마음에 비겁하게 먼저 발을 빼고 도망친 대가라고 생각하면 꾹 참아왔다. 그리고 석구는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Ⅱ
여주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뒤에는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하루하루가 허탈함 그 자체였다. 해가 지면 밤이고 해가 뜨면 낮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여주가 자신을 떠났는지 날마다 생각했다. 나는..나는 너가 원하는 그런것 절대 너에게 줄 수 없어.. 눈물짓고 나면 마지막으로 나에게 건넨 말의 의미를 매일같이 깨물었다. 자신은 여주인에게 바라는 것도 뭔가를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도저히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나쁜 일이 있으면 고칠 줄 알고 여주를 찾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도망친 여주는 이미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 석구는 여주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과의 사랑이 두려워 도망친 주제에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답지 않게 유치하게 굴었다. 여주가 누군가를 만나면 심술궂은 아이처럼 방해를 했다. 여주는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멋대로 하라는 듯이 굴었다.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어볼 말은 정말 많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 이유가 대수롭지 않으면 너무 허탈할 것 같아서.
오늘 또 여주가 헤어졌어. 여주는 울먹이며 “이번에도 당신이 한 일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한 게 아니었어. 얼핏 봐도 쓰레기 같은 남자였는데 잘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주가 그 남자 때문에 우는 게 짜증났다. 소주잔만 만지작거렸다. 여주는 주량이 강해 술을 자주 마셨지만 석구는 소주 절반도 마시지 못했다. 테라스에 여주와 와인을 마시며 마시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세상이 둘 다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웃기도 했지만. 석구는 오랫동안 덮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왜 버렸어요?
석구는 꽤 직설적으로 물었고, 여주가 들고 있던 소주잔이 입가 근처에서 멈췄다. 그리고 석구를 보았다. 이제야 제대로 보내기-이렇게 가슴 아픈 얘기를 해야 보는 스타일이구나라며 석구는 어색하게 웃었다. 새로 주문한 소주병에 소주는 이미 절반이나 비어 있었다. 혼자 과음하는 것 아니냐며 여주 앞에 놓인 소주병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여주의 소주잔에 담긴 소주를 자신의 목에 건네버린 맷돌은 곧바로 여주의 소주잔에 물을 채웠다.
“너무 많이 마셔” “뭐, 더 취하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다 괜찮아요. 제가 심심풀이로 그냥 지나가는 소원이었던 걸 ‘몰랐다고는 안 해’
석구는 플라스틱 테이블 밑에 숨겨진 손가락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와 헤어질 때도 그렇게 많이 울었나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툭 걸렸다. 여주는 아무 말 없이 석구만을 응시했다. 아니, 보고 있다기보다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여주의 연애에 방해가 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아파하라 같은 유치하고 미련이 가득한 행동이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여주를 만났을 때 왜 자신을 떠났는지 묻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오히려 더 불편해, 그것도 너무’
여주는 다시 소주병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이내 다시 소주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자신을 왜 버렸느냐고 묻는 석구에게 어떤 대답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비겁하고 겁이 많아서 당신이 주는 사랑이 너무 과분하고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몰라, 그냥 네가 심심풀이로 그냥 지나간 바람이었던 것 같아'”맞아”
석구는 힘없이 웃었다. 여주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안 믿으면 어떡해?” “이여주 정말…”
여주는 자신의 대답이 어이없다는 것을 알았다. 맷돌은 머리를 쓸어내린 어차피 제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다. 아까 마신 소주 한잔 때문에 입안이 씁쓸했다. 난 너와의 사랑을 후회한적이 한번도 없었어. 네가 왜 나에게 그렇게 굴었는지 답답하고 우울했지만 여주 너를 만난 것을 후회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너의 그 힘이 빠지는 대답에 괜히 그런 후회가 밀려왔다.
사랑해 줄 것처럼 행동했다. “……………………………………………………………………………………………………………………………………………………………”
석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이 질려서, 혹은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나쁜 말만 했다면 나는 당신을 죽을 만큼 미워했을 것이다. 석구를 바라보던 여주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이기적이다.
맷돌과 여주 사이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술을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나는 여주인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무서워서 줄 수 없는 무언가를 받지 않아도, 나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금방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면서도, 결국 너는 끝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는구나.
호엔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지막으로 올린 글이 작년 8월인데 22년이나 8월에 써온 글을 쓸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쓰고 싶어도 매번 미루게 되었습니다.얼마 안쓰다보니 머리가 굳어진건지, 더 잘쓰고 싶었던건지.. 오랫동안 안쓰다가 이렇게 첫글로 찾아왔는데 첫문장이 조금 슬픈 느낌의 글이라 T 요즘은 왜 이렇게 감성적인 글에 빠져있는지 모르겠어요.ㅎㅎ 제가 사랑하는 배우로서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너무 미련스러우면 아련한 글… 잘 표현되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ㅜ 다음에는 다른 분위기의 글도 가져오도록 노력해볼게요! 제 댓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요즘 또 코로나가 유행인데 마스크를 꼭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