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하성란 음력 7월 12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전보가 왔을 때 어머니는 여름동으로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전보는 때를 택하여 반드시 이럴 때

명작 1쪽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성란 <그 여름의 수사>

그해 여름 음력 7월 12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전보가 왔을 때 어머니는 여름동으로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전보는 때를 골라 꼭 이럴 때 오자 어머니는 붉은 양념이 묻은 두 손을 내밀었다.익. 혹시 유니폼에 고추양념이라도 튀지 않을까 집배원 청년이 뒤로 물러났다. 집배원은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며 손 대신 전보문을 끼울 만한 틈을 찾았고, 어머니는 어디에도 받아들일 곳이 없는지 양쪽 겨드랑이를 차례로 흔들더니 다시 입을 살짝 벌려 보았다. 집배원이 어머니 옆에 전보 쪽지를 내밀었지만 어머니는 턱을 들어 입을 열었다. 어, 이번에는 어머니가 겨드랑이를 벌렸지만 집배원은 어머니 입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익. 마치 두 사람은 택견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꼬불꼬불. 뻔뻔스럽다. 사람의 몸 속에는 저마다 사명감이라는 것이 있듯이 리듬감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하성란 #그여름수사 #2008년 이상문학상 #제3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수상작